58억원 보증금 소송이 던진 메시지…법원 “준공기한 넘긴 순간 사고 발생”
신용보강 장치로 불린 책임준공, 건설사 부실 앞에서는 어디까지 유효한가

[출처=언스플래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에서 ‘책임준공’은 가장 강력한 신용보강 장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시공사가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한 날짜까지 공사를 마치겠다고 확약하면 금융기관은 그 신용을 믿고 자금을 집행하고, 신탁사는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구조다. 하지만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내린 한 판결은 이 공식에 다시 질문을 던졌다. 시공사가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한 순간 이미 보증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 나온 것이다. 소송의 당사자는 KB부동산신탁과 건설공제조합이었지만, 그 중심에는 결국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한 삼부토건이 있었다.

법원이 본 책임준공…”계약 해지보다 약속한 날짜가 기준”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KB부동산신탁이 건설공제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보증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쟁점은 보증사고가 언제 발생했느냐였다. 건설공제조합은 시행계약이 해지된 시점이 보증기간 이후인 만큼 보증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약 해지 여부와 관계없이 시공사가 약속한 준공기한을 넘긴 순간 이미 책임준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상태가 됐고, 그 시점에 보증사고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건설공제조합은 KB부동산신탁에 약 58억원의 보증금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법원의 판단은 단순히 한 사업장의 분쟁을 넘어 책임준공 확약을 둘러싼 보증 책임의 기준을 보다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률 85.93%에서 멈춘 공사…책임준공은 지켜지지 않았다

문제의 사업은 삼부토건이 강원 춘천에서 시공을 맡은 테라스하우스와 연립주택 115가구 규모의 개발사업이다. 삼부토건은 2024년 4월 29일까지 준공을 완료하겠다는 책임준공 확약을 제공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준공기한이 지난 시점의 공정률은 85.93%에 머물렀다. 하도급업체와 현장 인력에 대한 노무비 지급이 지연되면서 공사가 두 차례 중단됐고 이후 실시된 사전점검에서는 미시공과 하자 문제도 확인됐다. 결국 사업장은 예정된 일정대로 준공되지 못했고 신탁사는 계약을 해지했다. 삼부토건은 이후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공사를 끝내지 못한 채 현장을 떠났다.

책임준공은 시공사가 끝까지 공사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시공사의 자금난이 심화되면 그 약속 자체를 이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사례는 그대로 보여줬다.

‘신용보강’이라 불렸지만…시간과 비용은 결국 남았다

책임준공 확약은 PF 사업에서 사실상 금융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시행사의 신용보다 시공사의 신용을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책임준공이 있다고 해서 사업 리스크가 즉시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드러냈다.

KB부동산신탁은 사업 정상화를 위해 직접 106억원을 투입해야 했고, 보증금 58억원을 회수하는 과정에서도 소송을 거쳐야 했다. 준공기한이 지나고 실제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 점을 감안하면 책임준공은 위험을 없애는 장치라기보다 손실을 일정 부분 보전하는 장치에 가깝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건설업계에서는 최근 건설사들의 유동성 악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책임준공 확약만으로 사업 안정성을 판단하기 어려워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공사의 재무건전성과 사업 수행 능력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새 주인 맞은 삼부토건…남은 과제는 더 많다

이번 판결이 나온 시점의 삼부토건은 이미 과거와 다른 회사가 됐다. 서울회생법원이 지난 6월 회생계획을 인가하면서 리빌드삼부홀딩스가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 84.24%를 확보했고 최대주주도 교체됐다. 반면 기존 최대주주였던 한국자산신탁의 지분율은 3%대로 낮아졌다.

다만 회생절차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삼부토건은 2024·2025 사업연도 연속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상태이며, 한국거래소의 상장 적격성 심사를 앞두고 있다. 주식 거래도 여전히 정지돼 있다.

이번 판결은 58억원 규모의 보증금 분쟁을 넘어 ‘책임준공은 과연 누구를 어디까지 보호하는 장치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 사례로 남게 됐다. 특히 재무구조가 불안한 건설사들이 여전히 다수의 PF 사업장에 참여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유사한 책임준공 분쟁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새 최대주주 체제의 삼부토건이 남아 있는 책임준공 의무를 어떻게 정리할지, 그리고 이번 판결이 다른 PF 사업장의 분쟁에서 어떤 기준으로 활용될지가 업계의 새로운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책임준공 확약은 PF 사업에서 중요한 신용보강 수단이지만, 시공사의 자금 사정이 급격히 악화되면 실제 준공을 담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보증사고 발생 시점과 책임 범위가 보다 명확해진 만큼, 앞으로는 책임준공 여부뿐 아니라 시공사의 재무건전성과 현장 수행 능력까지 함께 따지는 심사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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